본문 바로가기

교육

하이든 보케리니 생애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서양음악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때 한번쯤 들어봤던 인물들의 생애가 어땠는지, 그들의 경제적인 사정은 어땠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과 스페인에서 많은 곡을 작곡한 보케리니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이든 생애

하이든은 젊은 나이에 중세부터 이어져온 헝가리 최고 귀족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취임 하였습니다. 중요한 자리에 임용되어 평생 1000곡에 가까운 엄청난 수의 작품을 썼습니다.

 

25세 무렵에 하이든이 모르친 백작의 악장에 취임했을 때는 연봉 약 1천만 원을 29세에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부악장으로 채용되어 약 2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 곧 극비로 약 1천만 원의 추가금을 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악장이 사망한 후에는 34세의 나이로 궁정악장으로 승진 되었습니다.

 

교향곡

 

그 후 조금씩 연봉이 올라 43세에는 약 4810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고기나 와인 등 상당량의 현물도 지급받았습니다. 귀족들에게 악기 레슨을 하거나 악보 출판을 통해서도 적지 않은 수입을 얻었습니다.

하이든은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젊은 작곡가들이 파파라고 부르면서 인격적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이든의 작품은 독특하고 온실에서 자란 아름다운 화초 같은 느낌을 줍니다.

 

말년에 하이든은 천지창조와 사계라는 두 개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해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두 작품으로 약 16억 5천만 원의 거액을 벌었습니다.

 

2. 보케리니 생애

보케리니는 뛰어난 첼로 연주자였던 만큼 첼로 연주가 돋보이는 작품을 다수 작곡했습니다. 빈, 나폴리, 밀라노, 파리 등 각지를 돌아다니며 작곡가와 연주자로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23세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왕족에 고용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하이든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긴 세월인 약 26년 동안 궁정에서 생활하며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하지만 보케리니가 42세가 되었을 때, 돈 루이스 왕자가 사망했고 국왕 카를로스 3세에 탄원하여 약 4800만 원의 연금을 받으며 마드리드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이든

 

이듬해에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작곡가로 고용되어 마드리드에서 살면서 약 7500만 원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또 어렵게 협상해서 파리의 출판사 프레이옐에서 작품을 조금씩 간행하거나 주마드리드 대사 뤼시앵 보나파르트에게서 연금 약 1억 1250만 원을 받으며 생활 하였습니다.

 

하지만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져 62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년에 거주한 곳은 베란다가 딸린 방 하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