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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후기/독서 노트

남해주식회사 버블 이야기

1711년 영국의 남해회사는 정부의 채무를 민영화하기 위한 계획의 하나로 설립되었다.

 

영국 왕실은 남해회사에 대남미 무역 독점권을 부여했고, 정부 채권의 소유자는 채권을 남해회사의 주식과 교환할 수 있었다.

 

 

남해회사는 이를 통해 채권의 이자를 받았는데, 이자 수익은 남해회사의 유일한 수익원이 될 참이었다.

 

국제무역은 투기 열기를 들끓게 했으나 정작 남해회사는 노예무역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이윤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6개월 동안 남해회사의 주가는 8배가량 올라서 17206월에 최대치인 1,000파운드에 근접했다.

 

국왕인 조지 1세가 회사의 명예 대표였으며, 이 투자 광풍은 런던 사회의 대부분을 빨아들였다.

 

남해회사의 주식은 할부로도 판매되었다.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해회사의 주식은 그 이후 몇 개월 동안 150파운드까지 떨어졌고, 이듬해에는 100파운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주식을 사기 위해 빚을 진 많은 사람의 삶은 파멸되기 시작했다.

 

 

남해회사 버블 사건에서 투자자들이 한 실수는 무엇일까?

 

 

1.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영국인은 남해회사에 대한 투자 결정을 할 때 남미의 황금 도시들에 대한 환상을 투영했다.

 

남해회사에 대한 국왕의 지분과 회사 내에서의 직위는 튼튼한지지 기반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2. 아는 것에 투자하지 않았다.

 

남해회사 투자자의 대부분은 회사가 남미와의 교역을 통해 벌어들일 이익을 계량화할 만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해회사의 항해는 굉장히 길고 느렸고, 소수의 사람만이 영국을 벗어나 보았거나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3. 정직하고 능력 있는 경영진에게 투자하지 않았다.

 

남해회사 발기인들은 해상 운송 노선을 운용하는 데는 경험이나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경영진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남해회사 발기인들은 부풀린 가격으로 주식을 발행했다.

 

가장 큰 규모로 주식이 발행되었을 때 남해회사의 주식은 발행 가치의 3배에 맞먹는 가격의 정부 국채와 교환되기도 했다.

 

 

 

4. 경쟁이 심한 사업은 피하고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춘 기업을 찾아야 한다.

 

당시 스페인은 자국 식민지와의 교역권 통제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었고, 영국은 스페인의 동맹국이 아니었다.

 

영국 왕실은 자유롭게 남해회사에 남미 무역 독점권을 부여할 수 없었다.

 

남해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도 지속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많은 정부 관료가 선금을 내지 않고 일종의 옵션과 같은 형태로 주식을 부여 받았다.

 

또한 남해회사의 주식은 할부 판매도 되었는데, 선금에 이어 2번의 할부금을 더 내면 되었다.

 

 

 

5. 주가와 내재 가치를 비교해야 한다.

 

남해회사 주식의 시장가격은 현실적인 수준의 추정 가치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수년 동안 남해회사의 탐험은 오직 손실을 안겨 주었기 때문에 남해회사의 항해 사업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